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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20.5*30센치
보외1층앵글46-1-4
**序: 趙纘漢
跋: 丙辰(1976)...張鎬駿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백응(伯應), 호는 남와(南窩). 장금용(張金用)계로서 남파 장학의 후손이자 장한시(張漢蓍)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온재(穩齋) 장수모(張守模), 아버지는 통덕랑 장인섭(張仁燮)이다. 백부인 통덕랑 장운섭(張運燮)에게 입양되었다.
장용팔은 1803(순조 3) 문과에 급제하였다. 1806년 사헌부지평을 제수받았으나 이어지는 집안 어른들의 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효를 다하였다. 1824년(순조 24) 다시 성환도찰방(成歡道察訪)에 제수되었으나 2년 만에 돌아왔다. 1834년 이조정랑이 되어 선조인 덕령부윤 장안세(張安世)의 시호를 청하여 윤허를 받았다. 1835년에는 경성판관에 제수되었으며, 1843년 사헌부장령, 1844년 통례원우통례(通禮院右通禮)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있다
저서로 2권 1책의 『남와선생문집(南窩先生文集)』이 있다. 문집에는 시 103수를 비롯하여 제문 1편이 있으며, 부록으로 만사(輓詞), 제문, 가장(家狀), 묘갈명, 지우들이 보낸 편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