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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19.5*28.5센치
보외1층앵글44상1
**序: 柳尋春 ; 鄭來錫
跋: 丙午(1966)...後孫 德源十二代孫相虔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경산(京山). 자는 숙발(叔發), 호는 백천(白川). 이흥문(李興門)의 후손이며, 고조할아버지는 이안(李晏), 증조할아버지는 이수장(李秀場), 할아버지는 이팽조(李彭祖)이다. 아버지는 암서(巖棲) 이침(李忱)[1543~1580]이다. 형은 삼익재(三益齋) 이천배(李天培)[1558~1604]이다.
이천봉(李天封)[1567~1634]은 1567년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안포리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형인 이천배와 함께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1년(선조 34) 사마시에 합격했고, 1620년(광해군 12) 정구가 사망하자 사당 및 신도비 건립과 문집 간행 등을 주관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장현광(張顯光)의 천거로 의병장이 되어 경상도의 병사들을 관장하였다. 1628년(인조 6)에 유일(遺逸)로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되었지만,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정경세(鄭經世)는 이천봉에 대해서 마음을 다하여 군대를 모았으므로, 모든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두응산(豆應山)에 있다
덕암서원(德巖書院)에서 제향하고 있다. 덕암서원은 경산 이씨(京山李氏)의 3현(賢)인 삼익재 이천배, 백천 이천봉, 학가재(學稼齋) 이주(李紬)를 추모하기 위해 1672년(현종 13)에 덕암사(德巖祠)가 건립된 것에서 출발하였다. 흥선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76년(고종 13) 덕암서당(德巖書堂)으로 중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