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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45상6
**고려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문인.
이감의 자는 의민(義民), 호는 문한당(文閒堂)으로 1380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38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내·외직을 두루 거쳐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되자 유배생활을 하다가 만년에 고향에 은거하였고, 양친이 돌아가시자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묘소를 돌보며 3년을 여막에서 보냈다.
이감(李敢)[1362~1426]은 영천 이씨(永川 李氏)[영양 이씨] 상장군파(上將軍派)의 후손이다. 고조는 검교군기소감(檢校軍器少監) 이수(李粹)이고, 증조는 선교랑흥해감무(宣敎郞興海監務) 이영림(李永林)이며, 조부는 정순대부(正順大夫) 상장군(上將軍) 이당(李璫)이다.
아버지는 좌우위보승랑장(左右衛保勝郞長) 이영기(李英奇)로 1362(고려 공민왕 12)에 태어났다. 부인 정부인(貞夫人) 이씨(李氏)는 전의판서(典議判書) 이을현(李乙賢)의 딸과 정부인(貞夫人) 동래 정씨(東萊 鄭氏) 참봉(參奉) 정인보(鄭仁保)의 딸이다.
슬하에 3남 4녀를 두니 아들은 현감(縣監) 이거졸(李居拙)과 현감(縣監) 이거로(李居魯), 이거경(李居敬)이며, 사위는 판관(判官) 정개보(鄭介甫), 생원(生員) 양계남(楊季男), 만호(萬戶) 권자성(權自誠), 사정(司正) 조효원(曺孝元)이다
이감은 포은 정몽주의 고향 인근에서 태어나 선생의 행함을 듣고 또 보며 자랐다. 1380년(고려 우왕 6)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38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내·외직을 두루 거쳐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되자 언관(言官)[고려와 조선 시대, 국왕에게 간언을 임무로 하는 벼슬아치. 대간(臺諫)이라고도 한다]이었다는 이유로 유배생활을 하다가 풀려나 만년에 고향에 은거하였다. 평소에도 부모를 극진히 봉양했던 그는, 양친 모두가 90세를 넘겨 돌아가시자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엄숙하게 장례를 치렀다.
그는 “내가 장례를 극진히 하는 것은 포은 선생에게서 얻은 것이라”하며 피눈물로 묘소를 돌보며 각각 3년을 여막에서 보내니 호랑이도 감동하여 곁을 따르며 보호해 주었다고 전한다.
이감은 1426년(세종 8)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조정에서는 그의 효심과 덕행을 가상히 여겨 정려(旌閭)를 내렸기에 정려각을 세워 기리고 있다.
묘소는 영천시 임고면 매호리 심곡(心谷)에 있다.
409년 공의 효행을 기려 나라에서 정려하여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에 비각을 세웠으나, 1774년 건물이 퇴락하여 중건하였다. 길 건너에는 임강서원(臨崗書院)과 문한당(文閒堂)을 세워 추모하고 있으며, 묘소 아래 묘재인 심곡재(心谷齋)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