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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45상5
**序: 歲甲寅(1914)...崔永年 ; 朴桀圭
跋: 歲庚戌(1910)...車駿淵 ; 車性淵 ; 車相鎬 ; 車相鶴
**조선 후기의 문장가(1753~1809). 자는 숙장(叔章). 호는 사명자(四名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으나 사퇴하고 평생 동안 글을 벗하며 살았다. 경사(經史)에 밝고 시와 글, 그림, 음악, 활쏘기 따위에 두루 뛰어났다.
**차좌일(車佐一)은 고려 때 연안군으로 봉해졌던 효전(孝全)의 후손이며, 조선조 선조 때 명문장가였던 오산 차천낙(車天輅)의 6세손이 된다. 그런데 차좌일((車佐一)이 어떤 연유로 해서 여항인의 대열에 끼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 자신은 물론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했는데 노년에 부모봉양을 위해 만호란 무직을 지냈을 뿐이었다. 그의 시재가 탁월하였음은『사명자시집』에 실린 그의 시가 증명하거니와, 당시 사대부 중의 문장가였던 홍량호(洪良浩), 윤행임(尹行恁), 윤사국(尹師國), 정약용(丁若鏞) 등과 시교를 맺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탁월한 문재의 소유자이면서도 만호라는 낮은 벼슬밖에 할 수 없었던 그는 자연 사회에 대한 불만을 지닐 수밖에 없었는데,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불만의 해소책이 곧 시가 되었다. 송석원시사의 중요 구성원으로 천수경(千壽慶), 장혼(張混), 왕태(王太), 최북(崔北) 등과 시를 창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