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좋음
크기:21*32.5센치
보외1층나무장14상5
**김호운(金虎運)(영조44:1768~순조11:1811) 의성인(義城人). 자(字)는 치길(穉吉) 호(號)는 우간(雨澗)이다. 구봉(龜峯) 수일(守一)의 후(后)이며 시홍(始弘)의 자(子)로 우고(雨皐) 김도행(金道行)과 백불암(百弗菴) 최흥원(崔興遠)의 문인(門人)이다. 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고 순조(純祖)9년(1809)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관(官)은 정자(正字)이다. 저서(著書)에 「대학강록(大學講錄)」「중용답의(中庸답疑)」등과 문집(文集) 3책이 있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김호운의 시문집이다. 김호운은 안동에 세거하여 그 가벌이 문학행의(文學行懿)로 저명하였다. 유장원(柳長源), 김도행(金道行) 등에게 학문을 배웠다. 천자영오(天資穎悟)하여 7, 8세 때부터 시구(詩句)를 엮어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다. 1804년에 생원시에 오르고 180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보임되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아니하고 경학(經學)에 전심하여 조예가 높았다. 또 예설(禮說)에도 정통하였다. 이 문집은 1872(고종 9)년 손자 진인(鎭麟)·진기(鎭麒)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시(詩)는 다양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평이하면서도 담박하고 아름답다는 평을 들었다. 서(書)에는 스승인 유장원(柳長源)과 상례(喪禮)에 대하여 문답한 문목과 김도행(金道行)과 《심경》의 내용에 대하여 문답한 문목 등이 있다. 이 글들에는 송나라 주희를 비롯하여 이황, 김장생, 정구 등 여러 학자의 학설이 인용되어 있다. 변(辨)에는 조선 초기 문신인 권근(權近)의 예설(禮說)에 대하여 논평한 글, 주희의 감흥시(感興詩)에 대하여 평한 글, 《서경》 주서편(周書篇)에 나오는 연대와 사실 등을 고증한 글 등이 있다. 이 책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잡저에는 《대학》·《중용》·《심경》 등의 경전의 내용에 대한 강록(講錄), 차의(箚疑) 등이 있다.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 심통성정설(心統性情說) 등 성리학의 주요논쟁에 관하여 자신의 학설을 밝힌 글 등이 있다. 또한, 대구의 부인동(夫仁洞)에서 동약(洞約)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기자 대책마련을 위하여 여러 서원에 보낸 통문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