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좋음
크기:18.5*28센치
보외1층312상8
**김일손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 소미산인(少微山人),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조부는 김극일(金克一), 부친은 자진(子進) 김맹(金孟)이다. 1478년 15세에 단양 우씨(禹氏)와 혼인하였고 17세까지 조부에게서 글을 배웠다. 1486년에 진사가 되어 식년문과(式年文科) 갑과(甲科)에 급제하였다. 승문원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와 정자(正字) 겸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역임하였으나, 진주교수(晋州敎授)에 제수된 후 사직하고 귀향하여 '운계정사(雲溪精舍)'를 열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곧이어 당시 사림(士林)의 대표격이었던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 들어간 뒤, 다시 벼슬길에 나아가 승문원 주서(注書) · 홍문관 박사 · 부수찬 · 성균관 전적(典籍) · 사헌부장령 · 사간원 정언을 거쳐 홍문관 수찬 · 병조좌랑 ·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496년 문종의 비 현덕왕후의 묘인 소릉(昭陵)의 복위를 상소하고 1498년 『성종실록』 편찬에 앞서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어 능지처참의 형을 받았다. 이것은 1498년 사림파가 크게 화를 입는 무오사화(戊午士禍)의 시작이 되었다.사후 중종 때에 홍문관 직제학(直提學), 현종 때에 도승지(都承旨), 순조 때에 이조 판서에 각각 추증(追贈) 되었으며 목천(木川)의 도동서원(道東書院)과 청도(淸道)의 자계서원(紫溪書院)에 각각 배향(配享) 되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서예가인 김현성(金玄成)이 후손이다.현존하는 <서간문(書簡文)>은 획이 매우 교과서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초서(草書)에서 매우 정확하고 분명한 초서를 구사하였다. 또한 안진경(顔眞卿)의 삼고(三稿), 즉 《제질문고(祭姪文稿)》, 《고백부문고(告伯父文稿)》, 《쟁좌위고(爭座位稿)》에 보이는 특징도 겸하고 있다. 다만 안진경의 삼고를 직접 접하였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작품으로 <질풍지경초부(疾風知勁草賦)>, <유월궁부(遊月宮賦)>, <취성정부(聚星亭賦)> 등이 남아있고, 저서로는 『탁영집(濯纓集)』, 『회로당기(會老堂記)』, 『속두류록(續頭流錄)』 등이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