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좋음(사진참조)
크기:32*131센치
보외2층사무실
**광복 이후 부산에서 활동한 문학인이자, 교육가이며 정치인.
호는 설송(雪松), 다촌(茶村). 1925년 4월 28일 경상남도 창원시 동면 화양리 360번지에서 태어났다. 1939년 독학으로 전검(專檢)[전문학교 자격시험]에 합격하였고, 1946년 6월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51년 8월 부산대학교 예과 정치학과를 수료하였고, 1970년 2월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한 뒤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2월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 4월 도쿄대학교 대학원 정치 연구 과정 3년과 교육 연구 과정 2년을 수료하였다. 부산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7년 정상구는 염주용이 발간한 『문예 신문(文藝新聞)』에 시 「아침 바다」를 발표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런 인연 덕분에 문예신문사에서 정치 평론집 『인간(人間)에 돌아가라』와 『창조 생활(創造生活)의 길』을 내기도 하였다.
6·25 전쟁 시기에는 『도덕』, 『신생 공론』 등의 여러 매체에 혼탁한 정치 현실에 대한 분노를 예각화한 시와 비평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 첫 시집 『유형지(流刑地)의 비가(悲歌)』를 발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문학적 열정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이처럼 정상구는 광복기에 문학의 길로 들어선 이후 1950년대 후반까지 시와 소설, 비평 작업에 몰두하였다. 비록 제도 문단을 통해 화려하게 문단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민주 신보』·『영문(嶺文)』·『신조 문학(新潮文學)』 등 지역 매체를 통해 꾸준하게 창작과 비평 활동을 전개하였다. 1950년대 후반 들어 『민주 신보』에 「미혼모(未婚母)」를 연재하는가 하면, 1959년 10월에는 장편 소설집 『진공(眞空)의 계절(季節)』[제1권]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특히 1958년 당시 부산 지역의 문학지로는 유일하게 『신조 문학』을 2호까지 발간한 것은 부산 지역 문학사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환도 이후 문학 제도가 서울로 옮겨간 상황에서 이렇다 할 문학 매체를 지니지 못하였던 것이 1950년대 후반 부산 지역 문학의 현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편집과 발행을 맡아 펴낸 『신조 문학』은 지역적 연대가 옅어지고 뚜렷한 문학 조직체가 없던 상황에서 지역 문학의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뒤이어 1959년 월간지 『문학(文學)』을 서울에서 제3호까지 발행한 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매체 발간을 통해 지역 문인들에게 발표 지면을 제공하고, 지역 간 수평적·수직적 연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정상구는 1957년 9월부터 1959년 10월까지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부산지부장과 부산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을 지냈고, 1958년 문예지 『신조 문학』과 『문학』의 편집 및 주간을 지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부산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자신의 문학적 입지를 뚜렷하게 다져 나갔던 것이다.
문학 활동과 함께 정상구는 1951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경남상업고등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면서 동시에 1953년 12월까지 건국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및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였다. 1953년 1월부터 1955년 4월까지 창원의 대산고등학교 교장을 지냈고, 1954년 12월 부산에서 학교법인 혜화 학원을 설립하여 이사로 취임하여 교육 사업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55년 4월부터 1960년 12월까지, 1964년부터 1967년까지 혜화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지내고, 교장에서 물러난 두 차례 모두 부인인 정남이에게 교장직을 승계하였다. 1967년부터 2005년 3월까지는 혜화 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한편으로 정상구는 4·19 혁명이 일어나자 정계에 입문하였다. 1960년 7·29 총선에 혁신 정당인 혁신동지총연맹 소속으로 초대 참의원에 당선되어, 1961년 5월까지 원내 수석 부총무를 지냈다. 1967년 7월 신민당 소속으로 제7대 국회 의원이 되어 1971년 6월까지 신민당 정치훈련원 원장을 지냈고, 1977년 2월부터 1980년 2월까지 민주통일당 부총재를 지냈다. 1985년 4월부터 1988년 5월까지 민주한국당[민한당] 소속 비례 대표로 제12대 국회 의원, 1988년 5월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1992년 5월까지 제13대 국회 의원, 1996년 5월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소속의 비례 대표로 제15대 국회 의원을 지냈다.
5선 의원을 지내는 동안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한국·인도네시아 국회친선협회 회장, 한국·뉴질랜드 국회친선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정치 활동을 시작한 이래 정상구는 문학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지만,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치면서 폭넓은 문학적 행보를 이어갔다. 의정 활동을 펼치면서도 10여 권의 시집을 발간한 일은 치열한 문학적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상구는 다채로운 이력을 지닌 문인이다. 교육자이자 정치인이며, 한국 전통 차 문화 부흥 운동을 이끈 사람이기도 하다. 이에 1980년 12월부터 1985년 7월까지 국제민간외교협회 부총재와 한국서도협회 회장을 지냈고, 1981년 7월 한국다도협회를 설립하여 2005년 3월까지 이사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1997년 7월 다촌 다문화 상과 1999년 10월 설송 문학상을 제정하는 등 문학·교육·언론·정치·서예·다도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특히 문학적 출발로 삼았던 시는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문학적 생애를 지배한 갈래였다. 혼수상태를 오가면서도 병상에서 12번째이자 마지막 시집을 구술로 마무리하였다. 2005년 3월 24일 향년 81세로 사망하였다
정상구는 12권의 시집 외에 소설집·수필집·문학론 등을 출간하였으며, 『정치 기담(政治奇談)』[삼일신문사 출판부, 1952], 『다도학(茶道學)』[시문학사, 1983] 등 정치와 다도 관련 저서도 20여 권이나 간행하였다. 문학 관련 서적을 들면 다음과 같다.
『잃어버린 영가(靈歌)』[문예비평사, 1979], 『불타는 영가』[시문학사, 1980], 『화정무한(花情無限)』[국제신문 출판국, 1981], 『새벽의 영가』[시문학사, 1982], 『겨울 속의 영가』[시문학사, 1984], 『풍경이 부르는 손짓』[시문학사, 1987], 『역사의 강변에서』[내외신서, 1990], 『현해탄(玄海灘) 영가』[내외신서, 1991], 『하늘 길』[시문학사, 1996], 『공룡무 공화국(恐龍舞共和國』[남촌, 1997], 『조국의 통곡』[문학21, 1999], 『하늘 불꽃』[세종출판사, 2005], 『진공(眞空)의 계절』[세기문화사, 1959], 『우리나라 현대 문학 주조사(現代文學主潮史)』[부산: 협동문화사, 1953], 『설송 정상구 문학 전집』 1~5[세종문화사, 200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