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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20.5*30센치
보1층내17상1
**남병인(南秉仁)[1817~1874]은 퇴계학파를 계승하였으며 청송사림 학풍의 핵심인물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 『노산문집』이 전한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이언(彜彦), 호는 노산(老山). 고조할아버지는 남재흥(南再興), 증조할아버지는 남창빈(南昌彬), 할아버지는 남시우(南時遇), 아버지는 남계운(南繼運), 어머니는 최광수(崔光洙)의 딸 경주최씨(慶州崔氏)와 배겸(裵謙)의 딸 흥해배씨(興海裵氏)이다
남병인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자질이 있었고, 의지와 기개도 있었는데, 특히 글씨를 잘 썼다고 한다. 젊은 시절 주자(朱子)와 이황(李滉)의 학문을 계승하였으며,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또한 유학 이외에도 병학(兵學)과 역법(曆法) 등 다양한 학문도 능통했다고 한다. 그 후 유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이돈우(李敦禹)·유치엄(柳致儼)·김흥락(金興洛) 등과 도의(道義)로써 교유하였다. 남병인은 과거 공부에 뜻을 두기보다는 학문 연구와 향촌 교화에 힘쓰며, 청송 지역 퇴계학통(退溪學統) 계승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문집으로 『노산문집(老山文集)』이 전한다. 문집에는 권1에 시 87수, 서(書) 30편, 권2에 잡저 10편, 명(銘) 2편, 제문 4편, 뇌문(誄文) 1편, 부록에 행장·유사·묘갈명(墓碣銘) 각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잡저의 「충서설(忠恕說)」과 변(辨)의 「사칠이기변(四七理氣辨)」을 통해 퇴계의 성리설을 계승하고 있음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