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좋음
크기:20*30.5센치
보외1층2상5
**李柱天
1600(선조 33)∼1654(효종 5). 조선 후기의 무신·학자.
본관은 청안(淸安). 자는 천응(天應), 호는 습와(習窩). 아버지는 선무일등공신(宣武一等功臣) 이눌(李訥)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 참봉 김유정(金有定)의 딸이다. 아버지가 임진왜란(壬辰倭亂) 중에 창의(倡義)하여 전사하였으므로 그 유복자로 태어났다.
6세 때에 오절(吳幯)에게서 글을 배우는데 책을 붓들고 울거늘 그 연고를 물으니 아버지가 죽었는데 복을 입지아니함도 자식이냐 하며 손수 쇄복(喪服)을 지어입고 육식(肉食)을 금하고 3년상을 치루었다.어머니의 훈계로 무예(武藝)를 닦아 1628년(인조 6)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북방방어의 3년 임무를 마친 후에 사진(仕進)을 단념하고 고향에 돌아와 경사(經史)를 탐독함을 낙으로 여겼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임금이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파천했다는 소문을 듣고, 영천(永川)에서 동지(同志)들을 규합하여 금천(衿川)에 이르렀을 때에 화의(和議)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다가 말에서 떨어졌었다.1642년 청나라의 원병(援兵) 요청으로 그가 이에 선발되자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죽지 못하고 이제 어찌 의리를 배반하겠는가’하고 명(明)을 치기위한 전쟁을 한사코 반대하여 원수(元帥)로부터 철편(鐵鞭: 말안장의 가슴거리에 다는 쇠로된 방울)을 맞아 토혈(吐血: 피를 토함)하고 귀국 후에 마침내 죽었다. 저서로는 『습와집(習窩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