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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19*26.5센치
보외1층앵글장2상1
**조선 전기 청송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임(子任), 호는 남계(南溪).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손희(孫曦), 어머니는 참봉(參奉)을 지낸 김태년(金台年)의 딸 월성김씨(月城金氏), 할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郎) 손세돈(孫世敦), 증조할아버지는 생원(生員) 손흔(孫昕),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조이관(曺以觀)의 딸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손응현(孫應晛)[1564~1592]은 1564년(명종 19) 청송도호부 문천리(文川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충효(忠孝)’ 2자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고, 성장해서는 김몽기(金夢麒)에게 학문을 배웠다. 1591년(선조 24) 영천군(永川郡) 거여리(巨余里)[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일대]로 이주하였다.
일찍이 손응현은 정몽주(鄭夢周)를 흠모하여, 그를 배향한 임고서원(臨皐書院)과 그가 낚시를 즐겼다는 조옹대(釣翁臺)를 자주 왕래하였다. 또한 거여리의 시내 남쪽에 정사(精舍)를 짓고, 스스로 호를 남계(南溪)라 한 후 이곳에서 학문을 닦는 데 힘썼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천군의 여러 선비들과 의병을 일으켰다. 손응현은 7월의 영천성(永川城) 수복 전투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웠고, 8월에는 자인현(慈仁縣)[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일대]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물리쳤다. 그러나 곧이어 벌어진 경주성(慶州城)전투에서 순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