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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20*30.8센치
보외1층앵글장2상1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형삼(亨三), 호는 눌와(訥窩).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의 후예이다. 윤확(尹確)이 낙남(落南)하여 나주 영평(永平)에 터를 잡았고, 6세조 칠송(七松) 윤각(尹珏)이 화순 능주로 이거하였다. 아버지는 난곡(蘭谷) 윤영진(尹榮鎭)이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 권성록(權成祿)의 딸이다.
윤자현(尹滋鉉)[1844~1909]은 어려서부터 성리학을 좋아하여 『주서 절요(朱書節要)』와 『이정 전서(二程全書)』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또 중국의 이업후(李鄴侯)처럼 많은 서적을 구해두고 독서와 강학에 몰두하였다. 1882년(고종 19)에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정학(正學)을 높이고 이단을 배척하는 방도를 배웠다. 김낙현(金洛鉉)·최익현(崔益鉉)·김평묵(金平黙)의 문하에서도 수학하였는데, 최익현은 윤자현에게 「구봉 정사기(九峰精舍記)」를 써 주면서 “고인(古人)의 학문을 자기 책임으로 여긴 처사(處士)”라고 평하였다.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스승 송병선과 최익현이 순국하자, 장사할 때까지 상복을 입고 심제(心制)를 행하였으며, 두 스승의 문집 간행에도 적극 힘을 보탰다.
저서로 『눌와 유집(訥窩遺集)』 10권 3책을 남겼는데, 김지수(金志洙)의 서문과 최영조(崔永祚)의 발문을 받아 1910년에 윤상렴(尹相濂)이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