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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장2상1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경주 이씨의 시조는 알천양산촌장 이알평(李謁平)이며, 중시조는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이다. 경주 이씨의 세계는 중시조 이거명의 16대손[고려 말기]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8대파는 평리공파(評理公派), 이암공파(怡庵公派)·익재공파(益齋公派)·호군공파(護軍公派)·국당공파(菊堂公派)·부정공파(副正公派)·상서공파(尙書公派)·사인공파(舍人公派)이다.
이막배(李莫培)의 본관은 경주. 자는 내본(乃本), 호는 화계(華溪)이며, 1611년(광해군 3) 2월 13일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 1리에서 태어났다.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이천(李蒨)을 파조로 하는 국당공파(菊堂公派)로, 고조는 사과(司果) 이진형(李眞亨)이며, 증조는 무과 급제 후 첨사(僉使)를 지낸 이식(李植), 조부는 훈련원정(訓練院正) 이온수(李蘊秀)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정(軍資監正) 이시손(李時孫)이며, 어머니는 영천 이씨(永川李氏)로 목사(牧使) 이두표(李斗杓)의 딸이다. 부인은 창원 황씨(昌原黃氏)로 진사(進士) 황택중(黃宅中)의 딸이며, 슬하에 4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이만하(李萬賀)·이만복(李萬福)·이만헌(李萬憲)·이만생(李萬生), 사위는 함안인(咸安人) 조성채(趙成埰)이다.
이막배는 천성이 지극하고 총명하여 7세 때 천형지체(天形地體)를 묻는 질문에 ‘방원(方圓)’이라 답하자 조부 이온수(李蘊秀)가 심히 아꼈으며, 13세에 어머니가 이질을 앓자 하늘에 기도하며 빌자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석정(石井)의 물로 고치라고 하니 바위를 뚫어 어머니의 병을 낳게 하여 주변에서 일러 효정(孝井)이라 하였다.
또한 어버이 묘소 앞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효심재(孝心齋)’라 편액하고, 항상 그곳에 거주하며 어버이의 뜻을 잊지 아니하매 후손들이 그 집을 마을로 옮겨 ‘효덕재(孝德齋)’라 편액하고 학문을 하는 장소로 삼았다.
이막배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 주기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경전 탐구에 진력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다가 1674년(현종 15) 11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이막배의 저술로는 『태극집설(太極集說)』과 『원류집설(源流集說)』 각 1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