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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21.5*31센치
보외1층앵글장4상3
**조선 말기 안동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우경(羽卿), 호는 모계(某溪).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김진억(金鎭嶷)이고, 어머니는 여산송씨로 송양신(宋養信)의 딸이다
김홍락(金鴻洛, 1868~1933)은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태어났다. 서산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으로, 1884년(고종 21) 동당시(東堂試)에 급제하였으나 취소되었다. 1889년(고종 26) 「관도기(觀到記)」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수업을 받던 중 지어 올린 글이 우수작으로 뽑혀, 왕이 『대학(大學)』 한 부를 하사하였다. 1894년(고종 31) 문과에 급제한 뒤 더욱 덕성을 도야하고 의리를 강론하다가 스승인 김흥락이 세상을 떠나자, 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907년(순종 1) 비서감랑(秘書監郞)으로 임명되어 영친왕(英親王) 가례(嘉禮)에 제서관(製書官)으로 일을 한 뒤에 홍문관시독(弘文館侍讀)으로 승진되었다. 이후 비서관기주(秘書官記注)로 옮겼다가 곧 선조관(宣詔官)이 되어 통정(通政)의 품계에 올랐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두문불출하고 독서로 소일하며 여생을 마쳤다. 묘소는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만운산에 있다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 낙암정(洛巖亭)의 「낙암정중수기」를 지었는데, 지금도 현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