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좋음
크기:72*24센치
보외1층A1상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화식(鄭崋植)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성관(聖觀), 호는 동릉(東陵)이며, 1906년(고종 43) 8월 16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매곡(梅谷)에서 태어나 1977년 5월 24일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유정(鄭裕鼎)이며, 증조는 정치상(鄭致庠), 조부는 정진하(鄭鎭夏)이다. 아버지는 정연화(鄭淵和)이며, 어머니는 능주 구씨(綾州具氏)로 구연계(具然桂)의 딸이다. 부인은 인동 장씨(仁同 張氏)로 장후식(張厚植)의 딸이며, 슬하에 아들 정희수(鄭熙遂)가 있다.
정화식(鄭崋植)은 어려서는 족형 내암(耐庵) 정연박(鄭淵博)에게 수학하고, 17세에 낭산(朗山) 이후(李垕)의 문하에 들어가 서경(書經)과 주역(周易)을 공부하며 주자(朱子)와 퇴계(退溪)의 주리론(主理論)을 터득하는 등 학문을 이루었다. 23세에 북산 서당(北山書堂) 육위문(六偉文)을 지어 문장으로 이름이 났다.
임고 서원(臨皐書院)과 청호 서원(靑湖書院)·낙동 서원(洛東書院)을 중창하는 데 각종 규모와 절차를 자문하여 법도에 맞도록 하였으며, 말년에는 대구에서 시사(詩社)를 결성하여 유풍(儒風) 진작에 기여하였다.『동릉유고(東陵遺稿)』가 초고(草稿)로 남아 있다.
정화식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원제리 당지산(唐旨山) 선영 아래 있으며, 이채진(李埰鎭)의 갈문(碣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