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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코19상1철
**1876년(고종 13) 7월 12일∼1935년.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사초(士初)이고, 호는 농서(農西)이다.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경상남도 밀양(密陽) 금포리(金浦里)에서 태어났다.
오휴자(五休子) 안신(安㺬)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안효근(安孝謹), 조부는 안사원(安泗遠)이고, 부친 식호당(式好堂) 안언무(安彦繆)와 둘째 부인 밀양박씨(密陽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분성허씨(盆城許氏)이다.
어려서부터 하는 행동이 범상치 않았으며, 재주가 높고 뛰어났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글을 읽을 줄 알았으며, 글을 배우면서는 글 속의 이치를 환히 알고 있었다. 친척인 석하(石荷) 안종덕(安鍾悳)이 그를 보고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만구(晩求) 이종기(李鍾杞)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도호(陶湖)의 상전지결(相傳旨訣)을 듣기도 하였다. 또 퇴수(退修) 이병곤(李炳鯤)‧심재(深齋) 조경섭(曺競燮) 등과는 도의(道義)로 사귀었다.
학문연구에 정진하여 사람들의 추앙을 받을 만큼 학덕이 높아졌다. 사람들은 그에게 근래에 보기 드문 유학자로 ‘진심순덕(眞心純德)’이라고 하며 칭찬하였다. 말년에는 후학 양성에 정성을 쏟았다.
부인 분성허씨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안병돈(安秉暾)‧안병민(安秉玟)이고, 딸은 양정주(楊靖周)에게 출가시켰다.
묘소는 경상북도 밀양 증곡(甑谷)에 자리하고 있다.
문집으로는 『농서유고(農西遺稿)』가 있는데, 김황(金榥)의 서문과 조카 안병운(安秉運)의 발문을 붙여 1960년에 7권 3책 석판본으로 간행되었다. 그 외의 저술로는 안종창(安鍾彰)의 『희재문집(希齋文集)』과 김봉희(金鳳喜)의 『벽오유집(碧塢遺集)』에 붙인 발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