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좋음
크기:18.5*27.5센치
두터운 다듬이 장지임
분량:60장이상
보1층캐비넷51-2-1
**이규진
1688년(숙종 14)∼1760년(영조 36).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유문(幼文), 호는 낙촌(樂村).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증손이며, 현감(縣監) 이당(李簹)의 아들이다. 성품이 청수온후(淸粹溫厚)하며, 하늘의 모습(姿)와 도(道)에 가까웠고, 어버이를 지극한 효심으로 모셨다. 상제례(喪祭禮)에 정성을 다하여, 어려서부터 업(業)을 가정(家庭) 두었다. 형과 더불어 열심히 강습(講習)하여, 약관(弱冠)도 되지 않아, 문예(文藝)를 크게 성취하여, 글을 지을 때는 반드시 조옹(祖翁)의 궤범(軌範)을 법으로 하였으며, 시(詩)를 지을 때도 역시, 창건(蒼健)의 전(典)을 중요하게 여겼다. 주부(州府)를 천력(踐歷)하다가 군자감정(軍資監正) 올랐다. 다스릴 때에는 오로지 인서렴평(仁恕廉平)을 근본으로 하였고, 심법준형(深法峻刑)을 능사(能事)로 여기지 않았다. 만년(晩年)에 한거(閒居)할 때, 퇴어(退漁) 김진상(金鎭商), 섬촌(蟾村) 민우수(閔遇洙) 등과 기사(耆社)를 결성하여, 강호(江湖)에 배를 띄우고 서로 좇아 놀았다. 경진년(庚辰年)에 사망하였으며, 나이는 72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