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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18.3*27센치
권1~5,12~15
보69-3-1
**도한기 1836(헌종 2)∼1902. 조선 말기의 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예숙(禮叔). 호는 관헌(管軒).
경사(經史)에 밝았으며, 역학(易學)·산학(算學)·병학(兵學)·의학·패관(稗官) 등에 능하였고, 사부(詞賦)와 문장에 뛰어났다. 그러나 세속의 명리(名利)를 구하는 학문에 힘씀을 개탄하고, 30세 이후부터는 오로지 성리학 연구에만 힘썼으며, 언행이나 저서가 오직 성리학에 근본하였다. 고을에 있는 사단(社壇)이 피폐하매 1만 전(錢)을 내어 다시 고쳤다.
그 밖에 향음례(鄕飮禮)를 행하여 사풍(士風)을 진작시키고, 후진을 양성하고 유학의 부흥에 힘썼다.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직첩이 내려졌으나 받지 않았다.
이진상(李震相)의 문인으로 당시 장석영(張錫英) 등과 편지를 통하여 태극 및 심설(心說)에 대한 논변이 있었다. 저서로는 『관헌집(管軒集)』이 있고, 그 밖에 『소학문난(小學問難)』·『대학강설(大學講說)』·『춘추의례(春秋義例)』·『사례절략(四禮節略)』·『관복집설(冠服輯說)』·『심근강의(心近講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