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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78-3-1
**한여유
1642년(인조 20)∼1709년(숙종 35). 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곡산(谷山). 자는 상보(尙甫), 호는 둔옹(遁翁).
고려시대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 한예(韓銳)의 후손이다.
과 송시열(宋時烈)에게 학문을 배워 경학(經學)에 능통했다. 인감 됨이 삼가고 중후하고 옛 것을 좋아하고, 박학다식했다. 특히 『주역(周易)』에 심취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상수(象數)의 변(辨)을 좋아하고 탐구했다. 또한 병서(兵書)와 성률(聲律)도 모두 통달하였다.
저술로 「선후천도설(先後天圖說)」, 「건곤변(乾坤辨)」, 「삼십육궁해(三十六宮解)」, 「왕노재조화론설(王魯齋造化論說)」, 「중용혹문설(中庸或問說)」, 「대학혈구장론(大學絜矩章論)」, 「주례직방씨의(周禮職方氏議)」 등이 있다.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겼는데, 모친이 병환으로 앓아눕자 매일 밤마다 하늘에 정성스럽게 모친의 치유를 기원하였다. 후일 초상을 당했을 때 자신도 이미 늙고 병이 들었으나 아주 슬퍼하며 상제를 치렀고, 상제 때 반드시 정성과 의례를 다하였다.
1741년(영조 25)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추증되었다. “학문을 좋아하고 견문이 넓었으며 어버이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好學多聞, 事親至孝]”라고 표창하였다.
저서로 『둔옹집(遁翁集)』이 있는데, 1816년(순조 16)에 후손의 한필제(韓弼悌)‧한문건(韓文健)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서문은 홍직필(洪直弼)이 지었다. 특히 서(書)의 별지와 잡저에는 역학(易學)에 관한 학설로 자신이 연구해 얻은 역설(易說)과 도해(圖解)를 함께 수록하였고, 정규양(鄭葵陽)과 논답한 내용도 수록되어 있다. 1846년(헌종 12)에 그를 기리기 위해 두릉사(杜陵祠)를 창건하였다는데, 고종 때 금령으로 헐려버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