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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판본 朴在九;任台淳 共編 의성승감(義城勝鑑) 1책완질 상태좋음 보53-1-1 **경상북도 의성(義城) 지방의 인문 지리적 내용을 담은 지지(地誌)로서 박재구(朴在九, ?-?)와 임태순(任台淳, ?-?)이 함께 펴냈다. 의성군은 동쪽으로 청송군(靑松郡) 현서면(縣西面) 월향동(月享洞)에 접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상주군(尙州郡) 중동면(中東面) 상천리(上川里)에 접해 있다. 경도상으로는 동경 128도 5분에서 128도 2분 사이에 위치해 있다. 또한 남쪽으로는 군위군(軍威郡) 의흥면(義興面) 미리동(美里洞)에 접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안동군(安東郡) 남선면(南先面) 신흥동(新興洞)에 접해 있다. 위도상으로는 북위 31도 1분과 36도 3분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의성은 본래 소문국(召文國)이었다. 그러나 신라 벌휴왕(伐休王) 2년(185)에 나라가 망한 뒤 경덕왕(景德王) 16년(757)에 의해 문소군(聞韶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초기엔 의성부(義城府)로 승격하였고 현종(顯宗) 때엔 안동부(安東府)에 속하게 되었고 인종(仁宗) 21년(1143)에는 현령(縣令)이 설치되었다. 신종(神宗) 2년(1199)에는 당시 발발했던 민란으로 인해 성이 함락되자 감무(監務)로 강등되었으며 충렬왕(忠烈王) 때엔 대구(大邱)에 병합되었다가 곧 현령이 다시 설치되었다. 조선에 이르러 줄곧 현령이 설치되다가 고종(高宗) 32년(1895) 군(郡)으로 개칭되고 군수(郡守)가 설치되었다. 광무(光武) 11년(1907)에는 옛 비안군(比安郡)과 옛 의흥군(義興郡)에 각기 일부를 할애하여 이속시켰고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는 옛 비안 1개 면을 제외한 전부와 옛 용궁(龍宮) 1개 면을 포함하여 분속시켰으며 동남쪽 일부를 할애하여 군위(軍威)에 부속시켜 관내 18개 면을 분치(分置)하였다가 1934년 산운(山雲)과 소문(召文)이 합쳐지게 됨으로 인해 17면이 되었고 1936년에는 의성면이 의성읍(義城邑)으로 승격되어 현재 1개 읍과 16개 면으로 구성되게 되었다. 본서는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글로 현토(懸吐)되어 있어 이해를 돕고 있다. 권수에 목록(目錄)이 실려 있으며 서문과 범례(凡例) 등은 생략되어 있다. 이어서 곧바로 본문이 시작되는데 권1에는 위치급면적(位置及面積), 기후개요(氣候槪要), 건치급연혁(建置及沿革), 별호(別號), 관직(官職), 성씨(姓氏), 풍속(風俗), 형승(形勝), 산악(山岳), 산택(山澤), 토산(土産), 고적(古蹟), 명소(名所), 읍면동(邑面洞), 호구(戶口), 토지(土地), 농업(農業), 상공업(商工業), 광산(鑛山), 교통(交通), 금융(金融), 부세(賦稅), 위생(衛生), 종교(宗敎), 교육(敎育), 교궁(校宮), 원사단(院社壇), 사찰(寺刹), 능묘(陵墓), 수비(竪碑), 관공서(官公署), 누향(樓享), 제영(題詠) 등 모두 33조목이 실려 있다. 권2에는 관안(官案)과 인물(人物)의 2조목이 실려 있다. 권말에는 김기팔(金起八)이 지은 후지(後識)가 실려 있는데 이를 통해 본서는 박재구와 임태순이 함께 펴낸 것임을 알 수 있지만 기타 정확한 간행사항은 알 수 없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온 기나긴 역사를 지닌 지역의 인문 지리적 정보를 담고 있는 지지(地誌)로서 소중한 자료라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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