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본 오두인(吳斗寅) 양곡시고(暘谷詩稿) 1책완질 상태좋음
보1층318-2-3
**오두인 본관 해주(海州). 자 원징(元徵). 호 양곡(陽谷). 시호 충정(忠貞). 1648년(인조 26) 진사시(進士試)에 1등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했다. 1650년(효종 1) 지평(持平)을 거쳐 1656년 장령(掌令), 1661년(현종 2) 사간(司諫)이 되었으며 이듬해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1679년(숙종 5) 공조참판으로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682년 경기도관찰사, 이듬해 공조판서가 되었으며 1689년 형조판서로 재직 중,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西人)들이 실각하자 의금부지사(義禁府知事)에 세 번 임명되고도 나가지 않아 삭직되었다. 그해 5월에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가 폐위되자 이세화(李世華) ·박태보(朴泰輔)와 함께 이에 반대하는 소를 올려 국문(鞫問)을 받고 의주(義州)로 유배 도중 파주(坡州)에서 죽었다. 그해 복관(復官)되고 1694년 영의정이 추증되었으며 파주의 풍계사(豊溪祠), 광주(光州)의 의열사(義烈祠), 양성(陽城)의 덕봉서원(德峰書院), 의성(義城)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문집 《양곡집(陽谷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