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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간찰첩 표제 동독(東牘) 1책완질 상태좋음 크기:29.5*41센치 보58상1 **간찰16장 1,정홍경(鄭鴻慶) 2,이기연(李紀淵)1783년~ 본관 전주(全州). 자 경국(京國). 호 해곡(海谷). 1805년(순조 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자(正字)가 되고 1822년 대사성(大司成), 이어 이조참의(吏曹參議)·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강원도관찰사 등을 거쳐 1833년 우승지(右承旨), 1835년(헌종 1) 우참찬(右參贊)에 승진하였다. 이듬해 평안도관찰사로서 공무(公務)를 폐기한 죄로 삭직, 1837년 대사헌에 기용되고 이어 예조판서 겸 안핵사(按覈使)가 되었으며 이듬해 이조판서가 되었다. 1840년 탐학하다는 탄핵으로 고향에 쫓겨갔다가 죄가 가중되어 고금도(古今島)에 위리안치되었다. 1849년(철종 원년) 풀려나와 한성부판윤·황해도병마절도사·경상도관찰사·형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봉조하(奉朝賀)에 이르렀다 3, 4,이휘령(李彙寧:1788(정조 12)∼1861(철종 12)) 조선 말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군목(君睦), 호는 고계(古溪).아버지는 승순(承淳)이며, 어머니는 경주최씨(慶州崔氏)이다. 종가의 지순(志淳)에게 입양하여 이황(李滉)의 10세종손이 되었다.1816년(순조 16) 진사시에 합격, 1821년 동몽교관에 임명되었고,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의금부도사·탁지랑(度支郎)·동복현감·서산군수·영천군수·밀양부사·청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1851년(철종 2) 동래부사를 거쳐 1853년 동부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으며, 1855년 돈녕부도정을 거쳐 오위도총부 부총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사직상소를 올리고 역시 부임하지 않았다.벼슬살이를 하면서 여가에 학문에도 주력하여 이황의 성리학에 전심, 가학(家學)을 이었다.또한, 〈십도집설 十圖集說〉과 〈방경무도사 邦慶舞蹈辭〉도 지었다. 저서로는 《고계집》 8권이 있다 5, 6, 7,이명적(李明迪) 1840년 동래부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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