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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판서를 역임한 정기세(鄭基世)간찰

암행어사,판서를 역임한 정기세(鄭基世)간찰(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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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조선시대
모델 100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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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행어사,판서를 역임한 정기세(鄭基世)간찰 크기:33*48센치 *정기세(鄭基世) 1814(순조 14)∼1884(고종 2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성구(聖九), 호는 주계(周啓). 영의정 원용(元容)의 아들이며, 우의정 범조(範朝)의 아버지이다. 1837년(헌종 3) 정시(庭試)에 병과로 급제, 충청우도 암행어사를 거쳐, 응교·규장각직제학·이조참의를 지냈다. 1853년(철종 4) 강화도 조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하여 강화유수에 임명되었다가 전라도관찰사·의정부좌참찬·예조판서를 지냈다. 1862년 임술민란이 일어나자 판의금부사와 형조판서로서 이정청당상(釐整廳堂上)이 되었다. 고 종 즉위 후 더욱 중임되어 권강관(勸講官)·병조판서·한성부좌윤·철종실록찬집당상·제학·우찬성을 역임하였고, 《대전회통》 편찬을 위한 교식찬집소(敎式纂集所) 교정당상(校正堂上)이 되었다. 신미양요 때에는 광주유수(廣州留守)가 되었다가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각조의 판서·제학·시강원 빈객을 지냈다. 임오군란 전에 수원유수로 있다가 난이 수습된 뒤에도 요충지라고 유임되었고 한성부판윤으로 전임되었다. 제술관(製述官)과 문서사관(文書寫官)에 몇 차례 임명되었던 것으로 보아 문장과 서예에 조예가 있었던 것 같다. 성격이 겸손하여 다른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고 기쁜 일을 잘 알려주어 까치판서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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