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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대 판서를 역임한 김석조(金錫曺) 과거답안지

1600년대 판서를 역임한 김석조(金錫曺) 과거답안지(165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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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1650년경
모델 100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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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곡 김육(金堉 ; 1580~1658)선생의 손자이며 병조좌랑을 역임한 김좌명(金左明)선생의 아들이며 동부승지,판서를 역임한 김석조(金錫曺)선생의 과거합격답안지 크기:72*179센치 **김흥우(金興宇) 청풍김씨 잠곡 김육선생의 부친 **김육 김육(金堉: 1580~1658) 대광보국숭록대부 영돈녕부사 김육은 기묘명현인 대사성 김식의 후손이다. 젊어서부터 효행이 독실하였고 장성하자 문학에 해박하여 선비들에게 존중받았다. 광해조 때에는 세상에 뜻이 없어 산속에 묻혀 살면서 몸소 농사짓고 글을 읽으면서 일생을 마칠 것처럼 하였다. 인조반정에 이르러 제일 먼저 유일(遺逸)로 추천되어 특별히 현감에 제수되고 이어서 갑과에 뽑혔고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사람됨이 강인하고 과단성이 있으며 품행이 단정 정확하고, 나라를 위한 정성을 천성으로 타고나 일을 당하면 할 말을 다하여 꺼리고 싫어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병자년에 (중국의)연경에 사신으로 갔다가 우리나라가 외국 군사의 침입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밤낮으로 통곡하니 중국 사람들이 의롭게 여겼다. 평소에 백성을 잘 다스리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는데 정승이 되자 새로 시행한 것이 많았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대동법은 그가 건의한 것이다. 다만 자신감이 너무 지나쳐서 처음 대동법을 의논할 때 김집과 의견이 맞지 않자 김육이 불평을 품고 여러 번 상소하여 김집을 공격하니 사람들이 단점으로 여겼다. 그가 죽자 임금이 탄식하기를 "어떻게 하면 국사를 담당하여 김육과 같이 확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얻을 수 있겠는가."하였다. 나이는 79세였다. 그의 둘째아들 김우명이 세자의 장인으로서 청풍부원군에 봉해졌다 **김석조(金錫曺) 김육선생의 아들 1674년 동부승지 1678년 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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