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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서절요 (朱子書節要)10책 완질 상태보통이며 파자없음 **조선 중기 학자 이황(李滉)이 주희(朱熹)의 《주자대전(朱子大全)》 가운데 문인지구(門人知舊)와 주고받은 서찰(書札)을 뽑아 엮은 서간선집(書簡選集). 1611년(광해군 3) 기대승(奇大升)이 간행하였다. 책머리에 이황의 서문이 있고, 책끝에 기대승과 황준량(黃俊良)의 발문이 있다. 주희의 집주(集注)와 여러 학설은 세상에 출간되었으나 각계 인사와 의견을 교환한 서찰만은 널리 유포되지 않았기 때문에 48권에 달하는 《주자대전》의 서찰 가운데 주요 부분을 뽑아 편찬한 것이다. 책의 내용은 권1·2는 시사출처(時事出處), 권 3 은 왕장문답(汪張問答), 권 4 는 여유문답(呂劉問答), 권 5 는 진육변답(陳陸辨答), 권 6 은 문답론사(問答論事), 권 7 은 문답경전(問答經傳), 권8∼18은 지구인문답(知舊人問答), 권19는 속집, 권20은 별집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주희와 사우관계에 있던 인물들의 인품과 학문, 주희의 사상 및 이황의 제자들에 대한 교육사상이나 방법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있다. 20권 10책. 목판본. **朱子書節要(奎3540), 朱熹(宋)著, 李滉(朝鮮)編. 20卷 10冊 木板本 33.6×21.6cm. 四周雙邊 半郭:21.2×16cm. 有界 10行 18字. 版心:上下花紋魚尾. 李滉(1501∼1570)이 朱子의 書牘을 뽑아 모은 것으로 1611년(光海君 3) 전주에서 중 간한 것이다. 李滉은 이미 朱子學에 뜻을 둔 지 오래됐으나 간접적으로 ≪朱子大全≫( 性理大全)의 이름을 들어오던 중 43세 때인 1543년에 中宗의 命으로 校書館에서 刊刻 頒行된 ≪朱子全書≫를 接하게 되었다. ≪朱子全書≫는 朱熹의 詩文을 편집한 것으로 그 중에는 48卷에 달하는 朱熹와 公卿大夫·門人·知舊와의 왕래서신이 포함되어 있었 다. 李滉은 당시까지 傳聞으로만 듣던 全書를 처음으로 보아 흥미를 느꼈으나, 관직에 근무하는 동안은 열람해 볼 틈이 없었다. 그 후 病으로 관직을 罷하고 고향에서 閑居 하면서 본격적으로 精細하게 全書를 覽讀하기 시작하였다. 열람하면서도 그 중 특히 朱熹의 書札에 관심을 집중시켰고, 또 많은 인물과의 서신왕래를 통하여 당시 朱熹와 의 師友關係의 대강을 파악하는 한편, 학문적인 경향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가질 수 있 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당시인물의 行狀은 물론 해박한 宋史에 관한 지식이 요구되었고, 또 用語의 난해한 곳을 해독하기 위해서도 관련된 전적을 두루 섭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렇게 朱熹의 書札을 탐구하는 가운데 각 인물의 人品의 高下, 學 問의 淺深까지도 窺知할 수 있게끔 되었으며, 朱子學에로의 入門書로서 朱熹의 書札이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것은 論語가 聖賢과 諸子와의 問答類를 모은 것으로 聖賢의 學問에 入德하는 데 긴요한 것과도 마찬가지로 書札도 朱子學의 入門書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現今의 全書는 분량이 방대하여 널리 世間에 유포되지 못하고 또 번잡하기도 하여 45권에 달하는 朱熹 書札 가운데 그 3분의 1 정도만 가려 뽑아서 講友 門人諸子를 시켜 寫錄하여 14卷 7冊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成書는 되었지만 즉시 인쇄되어 간행된 것은 아니다. 李滉은 처음 全書를 대한 지 15년되는 해(1558)에 序文을 불여 두었었다. 公刊을 하지 않은 이유는 李滉의 自序에 의하면 ≪ 朱子全書≫의 書札을 3분의 2나 減한 자신의 「僭妄之罪」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後에 이 책의 跋文을 쓴 奇大升도 李滉이 朱熹의 書札을 寫錄하여 保管한 것은 그 뜻 이 「不欲以纂述自居也」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中國에서도 朱子書를 選錄했 던 吳思廉·王魯齋와 같은 사람이 있으나 現今에는 그 選錄이 전하지 않고 있다는 사 실도 李滉은 이미 알고 있었으며, 또한 門人들도 이미 朱熹의 集註諸說이나 家傳은 세 간에 전하고 있는데 유독 書札만이 널리 유포되지 않고 있는 것은 그르지 않느냐고 李 滉을 종용하여 마침내 출간되게 되었다. 門人들은 이 寫本에다 이름을 「朱子書節要」 라고 다시 짓고 日錄 및 註解를 달아 出刊하였다. 처음 出刊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이미 星州府에서 1561년(明宗 16)에 간행된 적이 있고(黃俊良 跋文) 李滉 自序가 1558 년이므로 아마도 1561년 星州府에서 처음 간행한 것이 아닌가 한다(李滉 自序는 1572 년版에 처음 收錄). 이 冊은 1572년(宣祖 5) 定州府에서 柳中영이 刊行한 것을 奇大升 跋文에 의하면 1611년 다시 全州府에서 重刊한 것이다. 내용 목차를 간추리면 時事出 處(卷1·卷2), 汪張問答(卷3), 呂劉問答(卷4), 陸陳辦答(卷5), 問答論事(卷6), 問答( 卷7), 知舊門人問答(卷8∼18), 續集(卷19), 別集(卷20)으로 編次되어 있다. 끝에 黃俊 良과 奇大升의 跋 그리고 刊記가 있다. 물론 목차 제목은 門人들이 작성한 것이나, 李 滉의 編次를 그대로 따랐을 것으로 짐작 된다. 본래 李滉의 編次本은 14卷 7冊이나 이 冊은 20卷 10冊으로 되어 있는 것은 續集(卷19) 이하는 후에 첨가한 것으로 보이고, 그 이전은 李滉 寫本의 卷數를 나누어 14권을 18권으로 門人들이 편집한 것 같다(다음 의 ≪朱子書節要記疑≫참조). 編次의 順序를 정하는 데 일관된 근거를 어디에다 두었 는지는 알 수 없으나, 朱熹의 行狀에서 관련된 時事를 당시 公卿大夫와 서신왕래한 것 을 우선 編次하고, 그 다음으로는 知舊·門人들의 것을 配列하였다. 知舊 가운데서도 朱熹와 학문적인 논쟁을 벌였던 人物은 따로 卷을 마련하여 한 곳에 모았다. 예를 들 면 汪應辰, 張??, 呂祖謙, 劉淸之, 陸九淵兄弟, 陳亮 등 대강 시대순으로 配列하였다. 每卷首에는 收錄各人의 略傳이 合載되어 있으며, 每書札의 題目 밑에는 小註로 書信往 來時期가 틈틈이 摘記되어 있으며, 또 頭註로서 校勘記가 붙어 있다. 또 每書札이 끝 나는 데에는 故事·人名·地名 등에 대한 한두 개 정도의 小註가 간략히 붙어 있다. 頭註에 나타난 校勘記를 살펴보면 校勘에 臺本으로 使用된 것이 나타나는데, 주로 性 理大全, 大全館本, 定本, 唐本, 周本, 元本, 一本, 今館本 등의 記錄이 보이고, 거기 에다가 傳記部分의 頭註에는 宋鑑, 一統志, 實紀, 言行錄, 語錄 등의 記錄이 보인다. 館本이나 大全은 모두 性理大全의 校書館本으로 짐작되지만, 定本, 唐本, 周本 등은 性理大全을 일컫는 것인지 또는 朱子書節要의 刊本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혹 定本은 定州府에서 板印한 「節要」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唐本, 周本 또 는 一本이라는 명칭도 節要의 各板本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奎중2468>은 零本의 동일 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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